법정 스님의 스승 "효봉 스님" 수행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
효봉(曉峰) 스님
효봉(曉峰, 1888~1966)은
근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의 초대 종정을 지낸 분입니다.
그의 일생은
드라마틱한 전환과 끊임없는 수행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1. 출가 전의 삶 (판사 이찬형):
1888년 평안남도 양덕에서
이찬형(李燦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며
귀국 후
27세(1914년)부터 약 10년간
평양 복심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하였고
한국인 최초의 판사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관 생활 중
독립운동가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했던
"인간을 죽이라는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처지에 회의감을 느껴
번민 속에서 판사직을 그만두고
홀연히 엿장수로 방랑 생활을 시작합니다.
2. 출가와 수행의 길:
판사직을 버린 후
약 3년간 엿장수로 전국을 떠돌며
고행과 참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시기 때문에
그는 '엿장수 중'이라고 불렸으며
38세(1925년) 늦은 나이에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석두 보택(石頭寶澤)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이때 법명 원명(元明),
법호 운봉(雲峰)을 받았으며
이후 효봉(曉峰)이라는 법호를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출가 후에도 수행열정은
특히 1930년부터 1931년 여름까지
금강산 법기암 뒤 토굴에서
약 1년 6개월간
외부와 단절된 채 좌선 정진하여
견성오도(見性悟道)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
불 속 거미굴에 고기 차를 끓이네 /
이 집 소식 누가 알리요 /
흰 구름 서쪽으로 날고 달은 동쪽으로 달리네"
라는 오도송을 남겼습니다.
또한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선풍을
계승하고자 노력했으며,
송광사 삼일암에서 많은 제자들을 지도하며
법정 스님, 구산 스님 등
기라성 같은 후학들을 길러냈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사상 역시
효봉 스님의 절약 정신과 가르침에서 비롯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효봉(曉峰) 스님은 1946년 해인사
가야총림 초대 방장에 취임했으며,
1958년 조계종 종정(宗正)을 역임하였고
1962년 대한불교 조계종(통합 종단)이
출범할 때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한국 불교의
구심점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 후 1966년
밀양 표충사 서래각에서 입적하였으며
사리와 정골은 송광사, 표충사, 용화사, 미래사 등
여러 사찰에 나누어 봉안되었습니다.
효봉 스님은
평생 '무(無)'자 화두를 참구 했으며,
'엿장수 중', '판사 중', '절구통 수좌' 등
그의 삶은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진리를 향해 나아간 수행자의 모범이자,
한국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큰스님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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